말의 무게를 잃은 사회 3편 : 감정의 무기화
3줄 요약
피해자의 감정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감정이 곧 진실이 되는 순간 말은 멈춘다.
우선 믿고 나중에 따지자는 태도는 말의 순서를 뒤집고, 사회를 감정의 인질로 만든다.
감정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진심일수록 더 말해야 하고, 감정 뒤에도 책임은 남는다.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그 사람은 상처받았잖아.” 이 말은 방패다. 그 누구도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해석도, 반론도, 분석도 모두 ‘상처’라는 단어 앞에 멈춘다.
그 순간, 감정은 검열이 되고, 말은 권리가 아니라 위협이 된다. 감정을 이해하라는 명령은, 감정을 논하지 말라는 지시로 바뀐다.
감정은 해석되지 않는다
감정은 느끼는 것이지,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감정은 반박할 수 없다. 감정을 근거로 모든 판단을 시작하면, 말은 설 자리를 잃는다.
누군가 “나는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순간, 그 감정은 사실이 되고, 그 사실은 비판할 수 없는 진실이 된다. 감정이 먼저 오는 사회는, 어떤 말도 의심받는다. 감정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일단 믿자”는 말의 해체다
우선 믿고 나중에 따지자는 태도는 말의 순서를 무너뜨린다. 말은 물음과 해석, 의심과 책임의 언어다. 그런데 감정을 존중하자는 이유로 질문을 유예한다.
“믿지 않으면 가해자다.” “왜 묻느냐, 네가 당해봤냐.” 이런 말들이 퍼질수록 사회는 감정의 인질이 된다. 감정이 옳고, 감정이 먼저고, 감정이 전부가 된다. 그다음은 없다.
피해는 단어가 아니라 구조다
감정을 말하는 것과 피해를 말하는 것은 다르다. 감정은 개인의 경험이고, 피해는 사회의 해석이다. 감정은 본능이지만, 피해는 증명되어야 한다.
감정을 피해로 부르면, 해석이 차단된다. 감정을 증언이라 부르면, 검증이 불가능해진다. 우리는 감정의 언어와 구조의 언어를 구분해야 한다. 피해는 단어가 아니라, 분석의 결과다.
감정은 책임을 유예하지 못한다
“그땐 내가 너무 힘들어서…” 이 말은 너무 자주 쓰인다. 분노도, 공격도, 폭력도 감정이라는 이유로 설명된다. 그런데 감정은 맥락이지, 면죄부가 아니다.
감정은 행동의 배경이지, 정당화의 도구가 아니다. 감정이 진짜일수록, 더 설명해야 한다. 더 책임져야 한다. 진심이면 말이 필요하다. 감정은 책임의 출발이지, 회피의 방패가 아니다.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다르다
감정을 이해하자는 말은 옳다. 하지만 감정에 갇히면, 말이 멈춘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과 감정에 무릎 꿇는 것은 다르다.
감정의 시대에 말은 더 필요하다. 감정이 앞서는 세상일수록, 말은 더 정교해야 한다. 감정은 촉매고, 말은 도구다. 감정이 방향이라면, 말은 책임이다. 우리는 말해야 한다. 감정 이후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