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aro & Scuro 빛과 어둠, 예술과 커피를 잇는 언어의 여정
1. 공유와 이정재의 독대 - 빛으로 심리를 조각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 2>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 많은 시청자들이 숨을 죽인 장면이 있다. 어두운 공간, 적막한 공기 속에서 공유와 이정재가 마주 앉아 눈빛을 교환하는 장면이다. 극적인 대사나 격렬한 움직임은 없지만, 오히려 그 정적의 밀도는 관객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그 분위기를 만든 진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빛과 어둠, 즉 렘브란트 기법이다.
이 장면에서 공유의 얼굴은 한쪽 면만 은은한 광원에 드러나고, 나머지는 어둠 속에 묻힌다. 이정재 또한 빛의 각도에 따라 감정이 가려지고 드러나며, 인물 간의 권력 관계와 심리적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 기법은 회화에서 비롯된 조명 방식, 바로 '렘브란트 라이팅(Rembrandt Lighting)'의 대표적인 활용이라 할 수 있다.
렌즈 뒤 조명의 위치와 각도를 통해 등장인물의 얼굴에 빛의 삼각형을 형성하고, 나머지는 어둠으로 처리하는 이 방식은 인물의 내면 심리와 갈등 구조를 시각화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2. 렘브란트 기법과 키아로스쿠로의 관계
렘브란트 기법은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가 즐겨 사용한 조명 기법으로,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를 통해 인물의 입체감과 감정을 부각시키는 방식이다. 이 기법은 이탈리아어로 '밝음'을 뜻하는 Chiaro와 '어둠'을 뜻하는 Scuro를 결합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에서 발전됐다. 키아로스쿠로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사용된 미술 기법으로,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작품에 깊이와 드라마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렘브란트 기법은 고유한 조명 테크닉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뿌리는 더 깊다. 바로 르네상스 후기 미술에서 등장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라는 표현 기법이다.
- Chiaro는 이탈리아어로 ‘밝은’, Scuro는 ‘어두운’을 뜻한다.
- 이 두 요소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평면에 깊이와 입체감을 부여하고
시청자의 감정까지 건드리는 묘사가 가능해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카라바조, 미켈란젤로가 그 기반을 닦았고, 렘브란트는 그것을 인물 중심의 내면 심리 묘사로 발전시켰다. 이는 단순한 회화 기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빛과 어둠, 이면과 본질을 동시에 그려내는 시각 철학이라 할 수 있다.
3. 네스프레소(Nespresso) 커피 입 안에서 느끼는 키아로스쿠로
이탈리아 미술사에서 출발한 Chiaro와 Scuro는, 의외의 장소에서도 발견된다. 바로 네스프레소(Nespresso) 커피다.
네스프레소의 바리스타 크리에이션 시리즈에는 다음과 같은 제품이 있다:
- Chiaro: 부드럽고 밝은 로스팅. 캐러멜, 곡물향 중심. 주로 라떼용으로 적합하다.
- Scuro: 진하고 강렬한 로스팅. 다크 초콜릿, 로스티한 견과류 향. 우유 속에서도 존재감이 살아남는다.
이 제품명은 단지 이탈리아어를 멋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커피의 ‘강함’과 ‘부드러움’을 단순한 수치로 표현하는 대신, 시각적이며 예술적인 언어로 감각을 은유한 것이다.
4. Chiaro & Scuro 일상 속의 미학적 확장
네스프레소 외에도, Chiaro/Scuro는 다양한 분야에서 감각적 대비의 언어로 널리 사용된다.
① 인테리어 디자인
- Chiaro: 화이트, 내추럴 우드톤, 라이트 그레이. 북유럽 스타일의 밝고 투명한 공간.
- Scuro: 다크 우드, 블랙 대리석, 섀도우 톤. 이탈리안 럭셔리 스타일의 깊고 무게감 있는 공간.
② 패션
-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흑백 대비는 시그니처 전략이다.
- Chiaro 룩: 라이트 베이지 수트, 화이트 셔츠
- Scuro 룩: 올블랙, 다크 네이비, 레더 트렌치
③ 영화 & 사진
- Film Noir, 고딕 스릴러, 범죄 드라마 등은 렘브란트식 조명을 그대로 차용한다.
- 사진작가 앤설 애덤스는 풍경 속에서도 명암을 통해 감정을 이끌어냈다.
④ 음악 & 문학
- 바로크 음악에서 음색의 명암 대비는 Chiaro/Scuro 개념에 부합한다.
- 단테의 『신곡』 역시 지옥(Scuro)에서 천국(Chiaro)으로 이어지는 극명한 감정의 여정을 그린다.
⑤ 자동차 & 전자제품 디자인
- Alfa Romeo Nero Scuro, Ferrari Scuro는 컬러명에 ‘Scuro’를 그대로 사용함.
- 노트북·스마트폰 색상도 ‘Chiaro Silver’, ‘Graphite Scuro’처럼 이름 붙이곤 한다.
5. 한 장면, 하나의 언어, 수백 년의 미학
<오징어게임 시즌 2> 예고편 속 공유와 이정재의 한 장면은 단지 ‘잘 찍은’ 장면이 아니다. 그 속에는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친 빛과 어둠의 예술, 렘브란트의 정신이 살아 숨 쉰다. 이탈리아어의 두 단어 Chiaro와 Scuro는 그렇게 미술관을 넘어, 우리 일상 속 디자인, 음악, 커피 한 잔에까지 침투해 있다.
빛은 어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 대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보고, 듣고,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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