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지난 해 12월 간암 2기 판정을 받았다.
암 판정을 받은 환자 가족의 심정은 끝이 안 보이는 심연 속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간암 판정 이후 당장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이 상황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너무도 명확하니
생각만 해도 심신은 지쳐갔고
일상 생활은 해야했기에 겉으로 웃고 즐기고는 있지만
속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모순적인 생활에 블랙스마일 증후군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끔 너무 우울해질 때가 있어서
이거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자신을 다잡아야만 했다.
나는 평소 자기 연민은 스스로를 좀먹는 생각이라 여겨서
나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인생을 즐겨보려고 했다.
인생은 불공평한 걸 받아들여야 인생을 즐길 수 있다라는 모토로 인생을 살아왔다.
근데 막상 그런 상황을 맞닥드리니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 하필 나에게?
왜 하필 지금일까?
모든 생각이 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너무 비련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근데 7개월 정도 이런 저런 생각도 하고 처음보다 마음이 차분해져서 그런지
좀 더 치밀하고 정확한 판단을 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이렇게 절망했던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 봤다.
그 당시 조만간 나는 첫째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었고
워낙 신경 쓸 일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 너무 많아 임계점을 넘어갔던 것 같다.
그래서 앞날을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만 했다.
가족관계상 어머니에게 간 이식 가능한 사람은 나 뿐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도무지 아이 양육과 간 이식 후 생활이 상상이 가질 않았다.
집사람과 나는 주변 가족들의 도움 없이 단둘이 완벽하게 바닥부터 신혼생활을 해서
주변 친지로부터 도움을 받기 어려운 처지였다.
육아에 대한 두려움 + 어머니 병 + 수술 후 나의 회복 등등..
모든 게 다 불확실했다.
내가 잘못되면 집사람은 정말 독박 육아를 해야만 할 처지였고
나까지 병간호를 해야 될지도 몰랐다.
그러한 까닭에 나도 모르게 현실 부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육아에 대한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고
제법 간 이식을 해도 해볼 만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만 아직도 두려운 부분은
이식 후 내가 예전만 할까?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될까?
만약 내 집사람과 아이가 아프면 그때가선 누가 이식을 해주지?
이런 고민들은 해소되질 않았다.
그러나 무한정 고민만 하고 있을 순 없기에 장고 끝에 결심을 했고
나는 내가 간 이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안 한다고 했으면 결과야 너무 뻔했고
장례식장에서 내가 아무 후회 없이 상주 노릇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그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던 내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못할 것 같았다.
평소 정의롭게 남을 돕고 인류애, 박애정신, 인본주의 등등을 외치며 살았는데
정작 자기 혈육인 어머니의 병을 외면한다면 너무 모순이 아닐까?
그래서 용기를 내게 되었다.
간 이식 적합도 검사를 해보자!!
결과가 어떻게 되든 최소한 노력은 해보자
다만 내가 글에 이런 소감을 적었다고는 하나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고
각자의 사정과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글 하나 따위로 생명을 담보로 한 행위를 장려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유교 사상이 팽배한 사회라 자식이 당연지사 부모에게 무언가를 바치고 봉양해야 된다는 강박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인터넷에 '간이식' 관련 글들을 검색해보면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로 장기 이식이 무슨 모발 이식하는 것마냥
별거 아닌 것처럼 후기들을 적어 놨다는 것이다.
당연히 자식이니까..
부모가 바라니까..
이런 쓸데없는 소리로 신파를 자극하니 합당한 사유로 간 이식을 거절하고픈 마음에도
괜히 죄의식에 사로 잡히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있다면 신파 섞인 글들에 휘둘려 감정적으로 이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모의 생명 연장을 위해서
자신의 60~70년 남은 인생을 위험한 도박판에 빠트리지 말길 바란다.
독신으로 살 게 아니라면
자신의 건강은 개인 것이 아니다.
처, 자식들에게 헌신해야 될 인생의 기초 체력이며
이 벨런스가 깨진 순간부터 당신의 미래 처자식들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꼴이 된다는 것이다.
정말 곰곰히 생각해보고
제발 !
수술이 잘된 케이스만 보지 말고 부작용 케이스를 면밀히 검색해보고 신중히 결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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